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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떠들썩했던 동성애 -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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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는 로마 역사상 가장 안정적인 황제야 

로마제국 전성기가 오현제의 평화로운 시기라고 하는데  하드리아누스가 그 5명 중 중간에 껴있어

나라도 부강해서 아무도 못 건들고, 정세도 평탄한 때야

비유하면 90년대 미국 전성기의 클린턴 대통령때랑 비슷한 느낌일거야



하드리아누스는 그런 시대에 당숙인 선황제한테 후계자 지명도 받았고 

원로원들한테도 지지받으며 서기 117년 로마제국 황제로 임명돼

그의 나이 41세였어

정말 안정적이고 꽃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그의 끔찍한 비극은 임기와 함께 시작돼







그의 즉위가 117년인데
125년 로마 예산은 로마시대 최고조였어 로마 최고 전성기라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지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의 집권 때 만든 제우스 템플인데 하드리아누스는 법무관, 고위공직자로 경력 쌓아서 건축 관련 업적이 유난히 많아)








그래도 로마제국에서 반란은 많았고

저 중에서 105년~108년 반란은 하드리아누스가 직접 전쟁을 치른 전쟁였어







이런 시국인지라 로마 황제는 123년 겨울에 북터키 지역을 시찰하러 갔어 






(사진은 무관하다 이해만 돕기위해서 )

근데 띠용? 12살짜리 미소년을 찾았어

그 아이의 이름은 안티노우스였어 

하드리아누스는 바로 이 아이를 몸종으로 데리고 다녀 


안티노우스는 분명히 로마나 그리스 민족이 아녔던건 사실이고

날카로운 외모에 금발인 그의 얼굴로 추리하길 북방 민족으로 여겨져






(사진은 무관하다2)


아름다운 아이를 곁에 두고 싶어했던건지 몰라도

12살 시골 아이와 로마 황제는 로마제국을 순회하는 여행을 시작했어 


안티노우스가 성장하자 둘은 관계도 갖는 사이로 변했는데

로마 황제가 안티노우스를 어찌나 사랑했는지

'사랑스러운 소년을 위한 시'를 계속 썼어 

물론 이 아재가 굉장히 에로틱한 시도 많이 썼지 








어느덧 7년 지나서 129년엔 두 연인은 안티옥에 도착해서 1년간 머무르며 관광도 즐겨

이듬해 130년에 이집트에 도착하지 




사실 황제 폐하는 비비나 사비네라는 정실 부인이 있었어 

119년에 황제 비서가 과하게 친절해하니 하드리아누스가 "궁정 예절 이상으로 불필요하게 접근한다"
라며 해고해버렸지

하드리아누스 폐하가 부인을 최소한 아끼긴 했던건 맞아

하지만 당대 수행원, 각국 증언자들은 "하드리아누스는 여성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라고 증언했지

순수 동성애자인 로마 황제는 사비네 사이에 아이가 1명도 없었어



하지만 사비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공식 행사도 수행하고

"정실 역할"을 하고 싶어했고 적극적이었으며 밝은 성격였다고 해

130년에 그녀도 이집트에 도착해 






그 자리에서 로마 귀족 여류 시인인 줄리아 발빌라는 사비네를 만나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기록했어


사비네도 서양 역사에서 손꼽을 미인였던건 맞아 







(사진은 무관하다 3)

  
동성애자인 황제 폐하는 미소년이 입을 옷을 계속 사주고 다녔어 

예쁜거 입히고 이집트를 같이 거닐며 쇼핑하고 관광다녔어

사비네 입장에선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미인에, 공개 행사에서 얼굴을 보이며 노력하는데도

황제 폐하는 제대로 바라봐주지 않았지만 

북방 야만족 미소년은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에 기분이 참담했을 거 같아 







35살 차이나는 미소년과 황제 폐하는 밤을 청했고 

같은 방을 썼어

황후마마는 각방에서 따로 잤고 

그 몇 개월의 밤이 황후마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을 거야







130년 가을이 왔고, 이집트인들이 농사가 잘 되길 기원하는 오시리스 축제가 열렸어 

미소년은 해안가에 남았고 황제 폐하가 수행원이랑 같이 나일강을 항해하고 돌아왔는데

미소년은 익사한채 죽어있었어 








서기 130년 가을, 안티노우스는 그렇게 이집트 나일강에서 마지막 여행을 마쳐




안티노우스가 왜 죽었는지에 대해 이 의문사는 후대에도 역사가들 사이에서 가설이 분분해

미신을 믿는 시절이니 황제의 건강을 되찾아주기 위해 스스로 제물로 썼다는설,

사고로 익사했다는 설, 

황제를 이용하려는 안티노우스가 신하들에게 암살당했다는설도 있는데
안티노우스는 정치에 일절 영향을 준 적도 없고, 순수 몸종였기에 가능성은 낮게 봐





황제 폐하의 반응

수행원과 이집트인들이 증언하길

"하드리아누스는 어린아이처럼 하염없이 울었다"고 하지







로마 제국의 전국토에서 추모하기 위한 9개의 경기를 열었고 

안티노우스 조각상이 수백개 넘게 만들어져 












이게 안티노우스 조각상이야

하드리아누스의 별장에서도 발견됐어








사비네는 6년이 지난 136년에 돌연사를 해

사비네 역시 어떻게 죽었는지도 밝혀진게 없어

그러나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기도 많았던 여인였어 

47세 나이에도 아름답다는 칭찬을 늘 받았고

가장 호화스러운 사치 생활도 누렸고 공개활동에 얼굴도 자주 내밀어서 적극적였던 사람이지

로마 역사상 가장 인지도 높은 왕비야



그리고 황제 폐하도 138년에 죽으며 셋의 드라마는 이렇게 막을 내려 


1줄 요약 - 2천년전에 동성애자 황제와 미소년이 드라마 찍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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