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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파라오의 저주에 대해 아라보자.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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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은 1922년 하워드 카터라는 젊은 화가가 영국의 캐너번 경의 후원을 받아


거의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왕묘를 발굴 했을 때 발견된 투탕카멘 왕의 무덤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신기하게도 투탕카멘의 무덤은 세가지의 우연이 겹쳐서 발굴 되었어, 그 세가지를 우선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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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우연




첫번째 우연은 기원전 1140년 경에 일어나 테베의 노무자들이 람세스 6세의 무덤을 조성하면서


입구 근처에 오두막 숙소를 짓고 퍼낸 흙더미를 쌓았는데 이런 과정에서 그들은 모르는 사이에


그 당시로부터 약 백여넌 전부터 있어왔던 무덤 하나를 덮어 버리게 되지 이게 투탕카멘의 무덤이야


하지만 바로 이 오두막과 흙더미 밑에 깔린 덕분에 어느 도굴꾼도 약 3000년이 지나는 동안 이 무덤을 발견할 수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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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우연




두번째 우연은 세월이 흘러 1899년 영국의 젊은화가 하워드 카터로 인해 일어나게 되지


하워드 카터는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에서 작업을 하다가 이집트의 고대유물관리국에 취직해서


나일강 상류의 고대유물을 관리하는 감독관으로 임명받게 되는데


그는 시어도어 데이비스라는 미국인 부호의 지원을 받아 4년동안 왕가의 계곡에서


하트셉수트 여왕과 투트모세 4세의 무덤을 발굴할 기회가 생겨, 덕분에 그는 왕가의 계곡을 거의 파악하게 된다.





투탕카멘3.jpg




세번째 우연



앞에서 말한 카나번 경은 전형적인 영국의 귀족이며 부호이면서 유명한 골동품 수집가 였는데


자동차 사고를 당해서 요양을 위해 영국에서 이집트를 다니게 되지


정기적으로 이집트를 방문해 요양하던 카나번 경은 고대 이집트의 유물과 문화재에 애착을 느끼고


이집트 고대유물관리국에 유적 발굴 신청을 하지만 그는 고고학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관리국 책임자 마스페로는 그의 신청서를 읽고 나서 카너번 경에게 카터를 발굴 현장감독으로 쓸 것을 권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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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번 경




평소 카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하던 그는 직장도 없이 근근히 살아가던 카터를 도울 겸 해서 추천한거야


카나번 경의 기술고문 및 발굴감독이 된 카터는 처음에는 고대 이집트인 귀족들의 지하묘지를 발굴했어


그러다가 미국인 데이비그가 왕가의 계곡 발굴권을 그에게 넘기자 카나번 경과 함께 왕가의 계곡 발굴에 뛰어들게 되지


왕묘에 대한 수색작업은 1909년에 시작되었는데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작업이 일시중단 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후인 1917년에 다시 재개됨 오랜 노력 끝에 재개 6년째가 되던 해인 1922년


람세스 6세의 무덤을 만들던 노무자들의 숙소 밑을 파내려가다가


정말 우연하게도 이 사건의 계기가 되는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하게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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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는 먼저 왕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하고 왕의 봉인이 있는 문까지 도달하자 공사를 중단하고 영국에 있는 카나번 경에게 연락을 해


십수년을 기다려왔던 소식인지라 카나번 경은 허겁지겁 달려와 카터와 함께 묘의 출입문을 열었지


묘는 전실, 부속실, 현실, 보물창고로 구성되어 있었고 엄청난 양의 금으로 장식한 관, 미라의 케이스, 호화로운 침대,


벽에 새겨진 화려한 벽화와 황금빛을 받아 빛나는 돌조각들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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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현실에(전실,부속실,현실,보물창고 중 현실) 도달한 발굴단은 "투탕카멘" 왕의 관을 발견해내고 말아


5중으로 된 관을 차례차례 열어보니 미라를 담은 관이 나왔고, 온몸을 아마포로 칭칭 감은 미라의 얼굴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 가면이 씌여져 있었지 이것이 바로 투탕카멘의 황금 가면임


가면을 벗기고 겹겹이 둘러싼 아마포를 헤치니 무려 143개나 되는 온갖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해


18세밖에 안된 파라오가 하늘나라로 가지고 가려했던 황금 보화는 어마어마 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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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으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었겠盧?


역사적인 대발견이 있은지 불과 5개월 후에 카나번 경이 모기에 물려서 죽어


근데 참 공교롭게도 투탕카멘의 얼굴에 있는 상처와 똑같은 부위를 모기에게 물려 사망하게 되지


그로부터 또 다시 "5개월" 후에 카나본 경의 조카가 원인모를 급사를 했으며


미라를 조사하기 위해 이집트에 왔던 방사선 기사 더글라스 라이드 역시 사망하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그 후에도 발굴과 관련된 18명이 잇달아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바로 파라오의 저주라는 말이 오가게 된거야


일반적으로 투탕카멘을 포함한 파라오들의 관에는 


'사자(死者)의 안녕을 방해하는 자에게 저주가 있으리라'라는 말이 적혀 있었는데


이 말 또한 파라오의 저주설을 뒷받침 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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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들은 파라오의 저주에 대해 묘지 안에 잠들어 있던 곰팡이를 사람들이 흡입하면서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켰다거나, 고대 이집트인들이 도굴을 막기 위해 무덤 내부에 독을 발라 놓았을 것이라는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지만 어느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해


그러던 중 이에 대해 구체적인 주장을 한 사람은 독일의 고고학자인 슈타인 도프 인데,


그의 연구에 따르면 발굴 작업에 관련된 사람은 1500여명이나 되는데


10년 이내에 사망한 사람은 21명에 불과하며 이들의 죽음도 모두 우연일 뿐 파라오의 저주와는 관계가 없었다고 하지


심지어 무덤을 발굴한 당사자인 하워드 카터는 66세까지 살고 자연사를 했기에 이 주장을 더욱 뒷받침 한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파라오의 저주는 카나번 경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언론사들이


그의 죽음을 부풀려 보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소동이라고 하는게 일반적인 통론이라고 해


하지만 내 생각에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엔 카나번 경이 투탕카멘의 얼굴에 있던 상처와 동일한 부위에 모기를 물려 죽었다는 점이 미스테리 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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