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게이들아 불철주야 산업화하느라고 고생이 많다.
나는 제목 그대로 올해 서른다섯 (79년생) 먹은 일게이야. 예전에 일베에 몇번 정보글이랍시고 싸질러서 ㅇㅂ 몇번가서 5렙 찍고나서부터는 귀찮아서 로그인도 안하고 그냥 눈팅만 하는 노땅임.
선3줄 요약
1. 인생은 방향이다.
2. 방향을 잡았으면 추진력이 필요하다.
3. 일에서 성취감을 얻어야만 힐링이고 나발이고 된다.
평소처럼 퇴근해서 잘라고 하다가 심심하기도 해서 인생 썰 풀어본다.
당연히 일베하면 팩트와 인증이 기본아니겠盧? 썰 중간중간에 인증도 넣었으니 무조건 썰주화주지마라. 앙망한다.
일베에 인생 Ssul 푸는 게이들보면 크게
1)나 좆병신임 여기서 나만한 병신있음? 케이스와
2)ㅆㅂ 나 돈 존나 ㅆㅅㅌㅊ로 많음. 근데 돈 어떻게 받았는지 혹은 벌었는지에 대해선 묻지마라 케이스..
이렇게 두 부류인 듯 하더라. 근데 둘 다 명불허전 좆중고딩 저장소인 ㅇㅂ에는 귀감이 되는 사례라고 할 수는 없잖盧? 내가 내 나이 대에서 얼마나 성공한 케이스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무작정 ㅁㅈㅎ 폭탄때리지 말고 자랑주화라고 까지말고 함 읽어봐다오 게이들아.
0-1. Prelude: 아버지
아버지는 멍청도 출신이다. 난 얼굴도 본적이 없는 조부모님들은 멍청도에서 슨상님 좆만한 구멍가게를 하셨다고 하더라.. (인증이고 뭐고 없다. 나도 그냥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니까) 근데 씨발 북괴 개일성 애미뒤진년이 쳐들어오는 통에 아주 그냥 집안 생계가 탈탈 털렸다. 아버지가 5남매 막내이고 47년생이셔서 정확히 당시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부산 피난민 촌에서 4살,5살 적에 목에 껌이고 담배고 걸고서 장사(라고 쓰고 구걸이라고 읽는다)하셨던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고 하더라. 아무튼 휴전이 되고서 다시 멍청도에 가족들이 돌아왔지만 가게 건물 자체가 종범인데 뭘 먹고 사盧? 그래서 움막 같은 집에 7식구가 거지꼴하고서 겨우 소작농 자리 하나 구해서 살았다고 하더라. 근데 아버지 멘탈이 존나 ㅆㅆㅅㅌㅊ라서 10살도 안된 나이에 내가 공부가 아니고서는 여기 움막에서 굶어죽겠구나.. 라고 생각 했단다. 근데 참고서는 고사하고 몽당연필에 연습장조차도 구할 수 없었지. 그래서 할수있나.. 명박갓카에 빙의하여 아버지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앙망했단다. 애새끼가 어른스럽게 공부하게 책을 달라하니 얼마나 대견스럽겠노? 그래서 책을 줬더니 존나게 책을 뚫어질때까지 파서 계속 1등만 했다더라. 중학교들어갈때쯤엔 집안 사정도 쥐꼬리만큼은 나아진데다가, 막내 아들놈이 공부를 곧 잘 해오니 할머니는 있는 돈 없는 돗 다 털어서 문구점을 차리셨단다.. 문구라도 대서 아들 뒷바라지 하겠다고.. ㅠㅠ 그 시절이야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1류3류 시험쳐서 들어가던 시절이니.. 아버지는 멍청도 명문 청주중,고를 다니셨어. 고등학교때는 고맙게도 지역 유지 독지가를 만나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고3 여름방학부터는 홀로 상경해서 종로학원 입시반 등록하고 바로 앞에 독서실을 끊어서 먹고 자고 했단다. 고3 가을에 할머니가 폐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고향내려와서 딱 1주일간 미친놈처럼 짐승처럼 울고 나서 다시 서울로 올라가서 귀신 씌인듯이 공부했다더라. 독종 ㅍㅌㅊ?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버지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무사히 패스하고 1966년도, 현역으로 서울대 문리대 물리학과에 합격했다.
그래서 大 서울대 물리 합격생에게 장밋빛 미래가 펼쳐졌느냐?..는 개뿔.. 당장 등록금을 어떻게 내고 서울에 머무를 방은 어떻게 얻노? 그래서 합격하자마자 입주과외 (부잣집에 아예 방을 한칸 얻어서 살면서 그 집 아이들 가르치는 과외.. 숙식해결되니 좋노) 달렸단다. 66년도 전국 수석이 경기고 출신 김두O (김두한 아님-_-;) 란 분인데 당시는 전자공학과 입학하셔서 지금 서울대 물리학과 정교수로 계신다. 아버지가 그 분과 동기라서 신문에 난 수석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 분은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어머니가 이대 교수이고 고등학교때부터 자기 집 서재ㄷㄷㄷ에서 책읽는게 취미였단다. ㅆㅂ.. 아버지는 종로학원 앞 독서실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자다가 아침에 아주머니가 청소하던 걸레에 머리 부딪쳐서 일어났다는데.. 그래서 아버지는 말만 물리학과지.. 성적이 운지에 운지를 거듭해서 겨우 졸업할 정도였고 군대는 ROTC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었다더라. (근데 최근들어서 하시는 말로는 자기한테 돈이 있고 시간이 있어서 존내 공부를 했더라도 당시 물리학과 동기들을 이기지는 못했을거라 카더라ㅋㅋ) 어쨌든 그렇게 졸업하고 장교로 다녀와서 (구)금성사 연구원으로 입사해서 생전처음으로 쌍도에 내려오게 되는데…
0-2. Prelude: 어머니
어머니는 진성 쌍도녀이시다. 구멍가게하던 아버지 집안과는 달리, 외할아버지는 쌍도에서 꽤 힘쓰던 집안 막내아들이었고,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 수 있던 처지였다. 근데 쌍도 게이들 종특인 허세가 역시나 있어서 외할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월급날 노름으로 탕진한다든가 기생집에서 술에 쩔어서 외박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더라. 어머니는 4남매 장녀이신데 어릴 적부터 안그래도 내성적인데, 아버지(그러니까 외할아버지)의 막장 행각을 보며 더 말수도 줄고 혼자서 책만 보는게 취미였다더라. 아버지 버프(고등학교 선생) + 독서빨로 어머니도 모 명문여고 졸업하시고 원래는 서울로 진학하려하였으나 ‘무신 가스나가 집을 떠나盧!!’라는 외할배의 일갈에 아닥하고 지거국 사범대(뭐 있겠노 ㅂㅅ대 아니면 ㄱㅂ대지)에 입갤하셨지. 그때야 사범대, 그것도 지거국 사범대 나와서 임용고시봐서 교사하는 건 당연한 코스였으니 어머니도 고등학교 사회선생으로 사회생활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던 중에 선자리를 알아보던 중에 아따 멍청도 출신 총각이 하나 있는디 야가 서울대 출신이랑께요? 라는 중매쟁이 말을 듣고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1. 일게이의 탄생 & 유년 시절
난 1979년에 태어났어. 그 덕에 몇 개월이지만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 수 있었지. 그리고 3년 뒤에 나중에 일게이가 될 남동생 놈도 태어나지ㅋ. 동생 낳고 1년뒤 어머니는 직장 사직하심. 어릴 적 기억으로 그리 경제적으로 쪼들리지는 않았지만(아버지 금성 다니다가 지잡대 교수로 이직하심) 워낙에 아버지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인지라 매사에 근검절약이 기본이었다.
요즘 김치년 마인드로는 상상도 못할 일이겠지만 아무튼 우리 집은 가장의, 가장을 위한, 가장에 의한 집이었다. 아버지가 6시에 퇴근하면 7시에 저녁을 먹었고 10시에 퇴근하면 11시에 저녁을 먹었다. 나나 내동생이나 얄짤없이 애들이 크는 나이라서 영양 섭취 제때 제때고 나발이고 그런거 없ㅋ다ㅋ. 딱 국민학교 3학년 올라갈 때 되니까, ‘너는 이제 소년이지 아기가 아니다. 고로 아빠 엄마가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거라’ 하더라. ㅋ 그 뒤로 아빠 엄마란 말 써본적 없음.
뭐 그래서 아버지가 폭군이었냐..하면 전혀 그렇진 않았다. 집안일과 평상시 자녀교육은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일임하셨지만 주말에는 근처 학교 운동장에 우리 형제 데려가셔서 공차고 놀았다.
어릴 적에는 나도 어머니 성격닮아서 내성적이고 많이 소극적이었다. 국민학교 때 한번 이사를 가며 전학을 갔는데 새로 만나는 아파트 애들 사이에서 괜시리 기가 죽고 주눅이 들어서 이 좆 초딩 ㅅㄲ들이 달라는대로 내 장난감 + 내동생 장난감까지 다 털어서 줬다. 과연 ㅄ 일게이 꿈나무답盧 ㅋㅋㅋ 근데 그렇게 조공하는 걸 퇴근하는 아버지가 보시고 사단이 난거다. 그날 존나게 털리고 토할때까지 운동장 달렸던 것 같다. ‘니가 가지고 있는 구슬 하나도 그냥 생긴게 아니다. 운동장 몇바퀴 돈다고 구슬 하나가 생기는줄 아냐. 자기 것도 못지키는 놈이 무슨 사람 구실을 하겠나’ 아무튼 이런 이야기였지.
그 사건을 계기로 아버지가 상당히 엄하게 나오셨는데, 우리 아파트에서 학교 운동장이 내려다보였는데 나하고 동생은 아버지 지켜보는 중에 좆초딩의 바디로 운동장을 아버지가 ok할때까지 돌고 와야지 저녁밥 주더라 근데 그게 토하기 직전 신물 올라올 때 라는게 함정ㅋㅋ 독종 아버지 만났으니 우짜겠노.. 맨날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악도 깡도 생기더라.. ㅋㅋㅋ 근데 신기한건 그렇게 깡다구가 생기니까 오히려 주위 애들하고 더 잘 지내게 되더라고.. 뭐 누가 누구한테 쫄고 삥뜯고 이런게 아니라 서로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까 말이 통하는건지ㅋ. 이미 삼청교육대 졸업한 셈이盧?? 지금이야 환갑도 넘은 노교수가 되셨지만 예전 기억이 있어서인지 아버지 정색하시면 지린다 ㅋ. 돌이켜보면 어릴 적에 아버지한테서는
첫째로 니가 복종해야할 규칙에는 군말없이 따라라,
둘째로 그 규칙을 지키는 선에서는 악과 깡을 다해서 니 것을 지켜라..
는 걸 배웠고 아직까지 이것들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모토들이다.ㅋ
2. 좆초딩 시절 – 어머니의 ‘신의 한수’
좆초딩 저학년 때까지는 공부라고는 코딱지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도 운동장 돌고 철봉 매달리기만 잘하면 터치 안했으니.. 하교해서는 집에서 점심 먹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애새끼들하고 올림픽 놀이하고 주먹야구하고 WWF 흉내내며 쳐놀다가 저녁쯤 아버지 오시면 존내 마무리 운동(?) 쳐하고 들어가서 저녁먹고 뻗어자는게 일상이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하고 청소하고 남는 시간에는 오로지 소파에 앉아서 책만 읽더라.. 그 기억만 남. (아주가끔 한달에 한번씩 여고동창들 만나서 독서토론회?같은 모임하고..) 그 당시에는 좆초딩들도 시험보고 나면 등수 쫙 세워서 알려주는데 나는 55명 중에 20~30등 정도 했던것같다. 대학에 대한 개념도 종범이라, 그때는 건국대 단국대가 건국신화 단군신화 삘이 났다고 느꼈는지 아버지한테 건국대 가고싶다고 했었는데 아버지가 호성 성님의 눈빛으로 쳐다봐서 지린 기억이 난다.
국민학교 4학년 마치고 5학년 올라갈 즈음이 되니 같이 놀던 좆초딩새끼들도 다 사라지더라.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그때도 공문수학이니 재능영어니 그런게 유행이었고 좀 극성인 집에서는 학원에 보냈지. 나는 일게이답게 마지막까지 동생일게이와 함께 놀이터를 지켰다. ㅆㅂ 아무도 없으니 둘이서 존나 재미없어서 어느 날은 일찍 집에 들어왔는데 어머니가 8절지 똥종이에다가 삐뚤삐뚤하게 선을 그어서 무슨 도형을 그려놨는데 이거 한번 풀어볼래 하더라고. 그래서 동생하고 고민하다가 gg치고 모르겠다고 하니까 이렇게 저렇게 설명해주더라. 지금은 무슨 문제인지도 기억안나는데 아무튼 그게 계기가 되서 한두문제씩 산수문제를 꼭 퀴즈처럼 만들어서, 직접 어머니 자필로 8절지 똥종이에다가 볼펜으로 써서, 그려서 나랑 내 동생한테 풀어보라고 하고 풀면 존내 칭찬해주고 못풀면 천천히 힌트를 조금씩 주면서 풀수 있게 해주더라고. 다른 좆초딩 친구들은 공문수학(지금은 눈높이인가 그럴거다) 10분에 200문제 계산 이 따위 노가다하면서 ‘수학 = 개씹좆같은 씨발놈’이라는 공식을 세우는 동안 나는 수학을 퀴즈처럼 배웠으니 날이 갈수록 재미가 느껴지더라.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도 문과출신인데 수학에 무슨 특기가 있으셨겠노? 고등학교때보던 수학참고서꺼내서 보고, 애새끼들 교육용으로 쓸만한 수학 문제집이 한국에는 없으니 외할배한테 부탁해서 일본 문제집을 구하고 그걸 직접 번역해서 8절지 똥종이에 자기가 적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집에 나오는 풀이해설도 우리한테 자연스럽게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 아예 달달 외워버리신 거다..) 이게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수였다.
너네도 알겠지만 국영수 사회 과학 중에서 수학이 제일 문제다. 수학만 되어 있으면 나머지는 언제든지 따라간다. 마인드 자체가 어릴적에 ‘수학 = 개씹좆’으로 박혀버리면 노답인거다. (특히 ㅂㅈ들이 그런데 내 대학 동기들만 봐도 이런 수학 실력으로 어떻게 왔냐고 물어보면 수학 물리는 그냥 외웠다더라..ㅋ)
그렇게 5학년 1년동안을 집에서 어머니, 동생 이렇게 셋이서 앉아서 문제 풀고 이야기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학 실력이 ㅅㅌㅊ가 되어 있더라고.. 6학년 3월달에 교육청 ‘산수경시대회’ 학교 대표를 선발한다고 전체 시험을 봤는데 우와 씨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본 응용수학 문제집을 풀던 실력이 쌓여있다보니 문제 난이도가 ㅆㅎㅌㅊ로 느껴지더라고.. (학창시절에 수학경시대회 나가본 게이들은 알겠지만 좆초딩중딩까지만 해도 수학경시대회라는게 몇 개의 문제 패턴만 알면 누워서 떡먹기ㅋ다. 요즘이야 우리나라에도 경시대회 문제집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방사능국밖에 없었지.) 일필휘지요, 파죽지세로 1시간 반짜리 시험을 30분만에 답 다 적어서 내고 나왔는데 ㅋㅋㅋ 나중에 결과가 나왔는데 4학년5학년때 연속으로 학교 대표나가던 놈을 100점만점에 20점 이상 차이나게 발라버렸다 ㅋ 5학년때까지 그저그러던 놈이 갑툭튀하니 선생들도 놀라서 이 씹새끼가 어디서 장난질이냐.. 컨닝을 하거나 문제를 빼돌렸나 하고 나를 불러서 다른 문제로 나혼자만 재시험을 보는 초유의 사태가 생긴거다 ㅋㅋㅋ 당근 재시험에서도 시간 넉넉히 남기며 다 풀었다.
ㅋㅋ 이런 일이 있고나니까 참 오묘한 감정이 들더라고. 5학년때까지는 존재감없이 비슷한 일게이 친구들끼리 WWF 놀이만 하던 병신이었던 내가, 전교에서 명성을 떨치고 당시에 좆초딩 사이에 초천재라고 불리던 놈을 발라버렸으니..
그 때 처음 아.. 공부를 해봐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나혼자서 저절로 들었다.
3. 좆중딩 시절 – 눈을 뜨다.
앞서도 말했지만 좆초딩 시절에는 동생하고 쳐놀던 기억밖에 없고, 부모님도 학교에 떡돌리고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종범이라 그 흔한 반장 부반장 한번 해본적이 없다.근데 좆초딩 말년에 어머니 덕에 그것도 마치 시간과 정신의 방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온 양으로 갑자기 수학 한과목에서 개 포텐이 터지며 어 시발 내가 뭐하는 놈이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좆중딩 진학하고 나니 역시 공부를 진득하게 하는 놈들이 나오더라. 근데 일단 수학은 먹고 들어갔고, 물상도 거진 수학으로 퉁칠 수 있어서 국어, 영어, 사회에 상대적으로 시간을 더 썼더니 성적도 역운지하더라고.
영어 공부 썰도 푼다. 요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당시에도 좆중딩은 빨간기본영어로 문장의 5형식 공식처럼 외우고, 학원선생에게 쳐맞으면서 수동태 능동태 바꾸던게 영어 공부의 전부였지. 근데 내가 중학교 입학 쯤해서 어머니가 문교부에서 승인받은 모든 좆중딩 영어 교과서 + 테이프 (그러니까 그 교과서를 그냥 읽어주는 테이프.. 지금도 이런게 있나 모르겠네)를 구해와서 마찬가지로 좆중딩인 나하고 좆초딩인 내 동생을 앉혀놓고 셋이서 연극하듯이 다 외웠다. 아줌마인 어머니도 외우는데 내가 틀리면 자존심이 상해서 문장의 5형식이고 명사 대명사고 나발이고 그냥 문장을 통째로 외웠다. 외워서 서로 주고 받고 존내 양키들 목소리 테이프로 듣고. 이리하니까 어학 연수 온 것처럼 신기하게 문법 공부를 하나도 안했는데 좆중딩 영어 시험에서 맞는 문장은 틀린 문장은? 하는 문제를 봐도, 다른 새끼들은 S+V+O니까 아 여기서 이걸 빼고 이 지랄 하는 사이에 나는 어 이 문장이 어색하다 해서 바로 찍게 되더라고.. 정말 외국어는 그냥 통째로 외우는게 장땡이다. 외국어도 언어인데, 언어는 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누가 수학처럼 공식만들어서 분석하라고 만든게 아니잖냐. 이 당연한 사실이 요즘에서야 각광을 받으니 참..
여하튼 어머니표 신의 두 수 (수학+영어)가 작열하다보니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았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교 등수에 1이 찍혀있더라. 와 씨발.. 한학년 800명, 3개 학년해서 2400명이 모여있는 월요일 아침 조례에서 2,3학년 선배 전교 1등들하고 셋이서 교단에 올라가서 상 받고, 교장게이가 내 교복에다가 ‘학력 최우수’라는 뺏지를 손수 달아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약했을 때 느끼는 희열감이 그런게 아닌가 싶다.
중학교때는 정말 내가 세상에서 뭐라고 될 것 같은 기분에 쩔어 살았다. 그러다 중3때 지역 대표로 뽑혀서 전국 좆중고딩 수학경시대회 (소위 말하는 서울대대회다 요즘 없어졌다카더라)에 가게 됐다. 우물안 좆중딩이라 그런지 서울대 자연대 28동 대강의실에서 전국 각지 대표 수백명 사이에서 시험을 보는데 쫄리진 않더라고. 하지만 결과는 광ㅋ탈ㅋ ㅆㅂ 세상은 넓고 잘난 놈은 많구나.. 그때 쓴맛을 봤지.
4. 좆고딩 시절 – 현실과 타협
중3때 과학고 시험봐서 붙었다. 그래서 고1때부터 출가해서 과학고 기숙사에 입갤하게 되는데.. 중3 전국수학경시대회에서 한번 쓴맛을 봤긴 했지만, 막상 과학고에 와보니 별에 별놈이 다 있는 거다. 뭐 집 잘살고, 부모가 보내주는 스파르타 학원에서 시키는대로 온 놈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나하고는 좀 다른 경지라는 느껴지는 놈들이 있었다. 단순히 성적을 말하는게 아니라, 몇 분을 이야기해봐도 아 이새끼한테 안되는구나.. 하는 느낌. 수학 선행학습도 안한 놈이 지구과학 시간에 편서풍 편동풍 배우더니 바로 코리올리 공식 유도해서 보여주는 거보고 충격먹은게 17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기억난다.
아무튼 좆중딩 시절에 나는 내가 뭐라도 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겠더라고ㅋ 그래서 한동안 우울해 있는데 눈치빠른 담임샘이 나를 불러서 그러더라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안다고. 꼭 천재로서 살아가는 인생이 전부가 아니다.. 한걸음씩 쉬지않고 나가는 사람이 정상에 서는 거라고. 뻔한 이야기지만 듣던 중에 꼭 내가 수학이나 과학으로만 인생을 승부를 봐야 하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조기졸업해서 KAIST 가려고 하던 생각 접고, 꾸준히 암기하고 경험 쌓으면 좆문가 대접받을 수 있는 의게이가 되기로함ㅋ. 존나 천재 같은 놈들한테 내가 솔직히 안된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그래 난 너네처럼 문일지십의 천재는 아니다. 그래도 배운거 안까먹고 매일 한걸음씩 나간다’ 이런 마인드로 좆고딩시절 놀때는 놀더라도 항상 스스로 정한 선은 지켰다. 과학고에서는 수학, 물리 잘하는게 장땡이라 한국지리나 지구과학 같은 과목은 애새끼들이 일부러 공부를 안했다. 그게 쿨하다고 생각했으니.. (더구나 그 당시에는 비교내신제라는게 있어서 과학고에서 공대나 자연대가는데는 학교 내신이 필요없었던 시절) 나는 허세 안부리고 적어도 수업 다 듣고 시험 전에 정리만 했더니, 그런 자잘한 과목들 성적들이 잘나오고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전체 성적도 역운지하더라고. 다행히 97년 11월에 치른 98수능에서도 역대급 성적은 아니지만 의대 가기에는 충분한 성적이 나와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인증 늦어서 미안하다. 여기 프린트스크린이 안먹혀서 멍청도식 캡쳐함.
5. 의대 시절
지방 과학고 다닐적에도 이미 나와는 넘사벽의 지능을 가진 종자가 존재함을 깨달았었는데 뭐 의대 입학하고 나서는 외계인 같은 ㅅㄲ들을 존나게 보긴 했지만 앞서 말한대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다’식으로 생각하고 평정심 유지했지.
또 여기다 아버지한테 배운 깡이 빛을 발하더라고 ㅋ. 몇대째 이름있는 의사집안 출신에 외제차 몰고 다니는 놈을 보거나 정말 암기력이 제록스 복사기 같은 미친 놈을 봐도 나는 my way~ 하면서 진짜 내 길만 갔다.
의대에서 누가 적응못하고 유급하고 정신병원 입원하는 줄 아냐? 맨날 PC방에서 스타하던 놈들? 강의 빠지면서 축구하러 다니는 놈들? 절대 아니다. 위에서 말한 ‘튀는 놈들’을 보면서 유리멘탈이 깨지고 자기 페이스 잃어버린 애들이 그렇게 된다. 멀쩡하게 수업도 잘 듣고 동아리도 하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던 녀석이 점점 말수가 적어지면서 ‘아.. XXX는 이 시험 F맞더라도 아버지 병원 물려받으면 되니까 무 슨상 관이겠어.. 그리고 OOO는 대가리가 존나게 천재니까 지금쯤 다 외우고 스타하러 갔겠지..’ 이런 소리하다가 시험 날 안나타나고.. 다음날 휴학계 내고.. 운지..
본과 3학년부터는 병원 실습 돌고 하는데 외과 계통 돌면 학생 나부랭이일지라도 참관중에 실수하거나 하면 개처럼 쳐까인다. ㅂㅈ들이나 또 유리멘탈인 경우는 이럴 때 또 운지하는데 ㅋㅋ 나는 뭐 정형외과 돌다가 레지던트한테 멱살잡히고 정강이 까였는데 (내가 수술장서 크게 실수했었지) 바로 죄송하다고 하고 다음날 쳐웃으면서 인사하니까 이 새끼 대인배네~ 하더니 실습점수 만점 주더라 ㅋ
여튼 그렇게 거북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니 결국 졸업할 때가서는 시발 200명 넘는 인원 중에 한 자리 수더라 ㅋ 졸업식때 나 같은 쌍도 촌놈이 의대 본관 단상 올라가서 학장 게이한테 상받으니..
두번째 인증
6. 지금
결혼은 안했고, 앞으로 할지 안할지 모르겠음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되면 더 썰 풀게.
지금?
진료보다가 환자 끊기면 스마트폰으로 일베 눈팅하는 일게이지 뭐~
아.. 내 동생은 서울대 사회대 나와서 모 컨설팅 펌 소속임. (동생놈 명함이 있긴한데 남의 명함가지고 인증하기 그래서 안했다)
내가 얼마나 성공한 놈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이 시각까지 일베에 죽치고 있는 좆중고딩 + 방향을 잃은 성인 일게이들에게 몇 마디만 10선비질하고 마칠게.
첫째는 창용성님 말처럼 인생은 속도가 중요한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니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잘 생각하되, ‘니 능력도 잘 생각’해라. 나도 나름 좆고딩때 모의 수능때는 전국 수석도 해봤고 (노인증이라 미안타), 실전 수능때도 0.05% 안에 들었다. 그렇지만 난 내가 절대로 아인슈타인이나 하이젠베르그는 고사하고 주위 친구놈보다도 그런 지력에서는 딸림을 인정했고 진로를 수정했다.
둘째는 방향을 정했다면 문제는 추진력이다. 유혹 (ㅂㅈ, 술, 게임)보다 더 무서운게 ‘나 까짓게 해봤자 정말 이게 되겠냐’하는 의구심이다. ‘나보다 잘난 놈들이 널렸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넌 졌다. 깡다구를 키워라.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마라.
셋째는 한때 일베간 글처럼 김치년식 힐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거다. 취준생에게는 취업이 힐링이고 고시생에게는 합격이 힐링이다. 니 스스로 니 자신이 좆밥이라고 생각된다면 좆밥 상태를 탈출하는게 답이지, 어디 동남아 휴양지에 널부러져있다고 힐링되는게 아니란거다. 나는 좆초딩때 어머니의 도움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학 포텐이 한번 터졌는데 그 당시에 느꼈던 희열은 의대합격할때도, 졸업식때 상받을때도 다시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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