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MBC에서 방송된 '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를 처음 본 게이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학원 강사를 몇 년 했었는데 중고딩들은 이소라에 대해 종범이길래 좀 적어본다.
1. 가수 이소라가 되기 까지.
이소라는 1969년 12월 29일(양) 생으로 동명인 모델 이소라와는 동갑.
둘이 친하냐는 물음이 있는데 이소라가 딱히 친구가 없음 일게이들 같지 않盧?
가끔 패션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 전화를 한다곤 하는데 그게 1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통영에서 태어났으나 거의 서울로 곧바로 올라와서 자람
동명여고 졸업 이후 인천대학교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했다고 해.
노래 부르는게 좋아서 중학교 때부터 학교 합창단에 들어가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당시 메조 소프라노 파트였다고 하지(메조 소프라노란 소프라노와 알토의 중간으로 여성의 평균 음역대 정도 되는 파트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게 시작한 노래가 좋았고, 당시 음악선생님이 이소라에게 "넌 훌륭한 메조 소프라노가 될 수 있을거다"라고 했으나
부모님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고 하지.
이유는 별거 없어. 먹고 살기 힘들까봐.
그래서 "그럼 미술은 해도 되느냐"고 이소라가 반문했더니 부모님이 미술은 허락해주셨다고 해.
딱히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고3때부터 6개월간 입시 미술을 빡시게 했대.
순수미술은 음악만큼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부모님이 산업디자인 쪽을 권유하셨고
산업디자인 쪽은 입시 할 때 그리는 그림이 이미 정형화되어 있어서 매일 비슷한 그림을 그리곤 했대.
썩 재미있진 않았나 보더라구.
그러느라 그랬는진 몰라도 수학 5점 맞은적 있다는 발언을 해서 팬들이 가끔 놀리기도 해.
(그랬더니 '음악은 수학이다'라며 반격을 했지만 5점이 이김ㅋ)
준비기간이 애초에 짧았던 터라 재수의 위기까지 왔었으나 인천대 산업디자인 학과를 붙게 돼
88학번으로 인천대 신입생이 되지. 이게 어쩌면 이소라 인생의 첫번째 기회였을지 몰라.
왜냐면 이때 이소라는 인천대 통기타 동아리에 가입을 하게 되는데
이 통기타 동아리 내부에서 스트리트 재즈 그룹이 만들어지거든.
거기에 참여하면서 이소라의 음악 인생이 시작됐다고 봐야지.
2. 낯선사람들의 낯선사람들
그때 만들어진 스트리트 재즈 그룹의 이름은 '낯선사람들'.
재즈에 관심이 있는 게이들이면 한번 들어봤음직한 이름일거야.
낯선사람들의 리더는 고찬용이라는 사람이었고, 이 사람이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사람이야.
고찬용은 유명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천재라고 생각해.
대상 수상자에게는 데뷔 앨범을 내주게 되어있는거 아盧?
이때 고찬용은 "낯선사람들이라는 저희 팀이 있는데요..."라고 하면서 자신의 개인 앨범이 아닌
낯선사람들의 1집 앨범을 내게 돼.
그 전에도 낯선사람들은 공연도 좀 하고 했었다지만, 어쨌든 이 그룹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독특한 스트릿 재즈 풍의 음악색으로 크게 주목을 받았다고 하지.
낯선사람들은 5명으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그 중 여자 보컬은 이소라를 포함해 두명이었지.
이소라는 엘토음역대를 맡았고, 다른 여 보컬인 허은영은 소프라노 파트를 맡게 됐어.
낯선사람들 노래를 들어본 게이들은 알겠지만, 허은영의 목소리는 톡톡 쏘는 편이야.
그래서 메인 멜로디를 이끌어가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지.
당시의 이소라는 노래를 굉장히 힘있게 하는 편이었고 젊어서 소리가 약간 뜨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는 소리를 가지고 있었지. 또 목소리가 독특한 면이 있어서 이목을 끌기에도 좋았고.
이런 이소라의 모습을 보고 탐을 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던 거야.
이미 데뷔를 했던 김현철(개그맨 말고)이 낯선사람들의 공연을 보고
이소라와 친분을 맺게 되고, 그러면서 영화음악 OST를 함께 하자는 제의를 해.
당시 그 얘기를 전화상으로 했다고 하는데 이소라는 "응~ 그래~ 알겠어~" 이렇게 수락을 했다고도 전해지지.
그렇게 해서 이소라와 김현철은 함께 OST 작업을 하게 되고 총 2편의 영화에 노래를 싣게 돼.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그대 안의 블루
이 두 영화지. (영화가 ㅅㅌㅊ은 아니고 ㅎㅌㅊ였던거 같다...)
수록된 노래는 영화와 같은 제목이었던 두 곡과 '그냥 이렇게'라는 노래까지 총 세곡 이었고
이 중 그대안의 블루는 영화는 씹망했는데 노래는 ㅅㅌㅊ는 기이한 현상을 빚어내게 돼.
(그리고 '그냥 이렇게'는 이소라 1집 앨범에 마지막 트랙으로 수록되지)
노래가 잘 되자 김현철은 이소라에게 같이 TV에 나가서 부르자고 했지만 이소라는 쿨하게 거절.
그래서 장필순씨가 대신해서 김현철과 듀엣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
이때부터도 알겠지만 이소라는 집순이의 수준을 넘어선 사람이었어
낯선 사람들 활동 당시에도 리더였던 고찬용이 어느날 공연에서 이소라가 실수를 하자 혼을 냈나봐.(고찬용이 후배야)
혼이 난 이소라는 6개월을 칩거했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책을 하는 시간이었다고 함)
그러다 고찬용이 다시 전화를 하고 불러서 다시 나갔대.....
3. 이소라의 1집 솔로 앨범.
어쨌든, 이소라의 상품성을 확인한 김현철은 이소라에게 다른 제안을 하게 되지.
"앨범 낼래?" 라는 제안 말야.
그러자 이소라는 "응 그래~"라고 해서 나온게 이소라 1집, '고백'이라는 앨범이었어.
이 앨범이 나오기 전 부터 관심을 가지는 매니아들도 몇 몇 있었다고 전해져.
그대안의 블루로 어느정도 유명세를 타긴 했으니까.
앨범이 발매되고 '난 행복해'라는 노래가 타이틀곡으로 선정이 됐지.
그리고 이소라는 100만장이라는(정확하진 않은데 그쯤으로 집계됨. 어쨌든 당시 엄청난 돌풍이었대) 엄청난 양의 앨범을 팔아버려.
거의 뭐 자고 일어났더니 스타가 된 거야.
잠깐 여기서 낯선사람들 얘기를 다시 꺼내자면,
인천대 통기타 동아리에서 낯선사람들을 시작하긴 했지만, 이미 이소라는 2학년 때 인천대를 자퇴했었어.
이유는 친구가 없어서..................
낯선사람들 활동만 하고 있었던 건데(대학 다닐 때 한 달 아르바이트를 한 걸 제외하곤 알바 경력도 없다는 상백수...인데 CM송 같은거 불러서 돈벌었대)
솔로 앨범이 ㅅㅌ of ㅅㅌ를 치면서 낯선사람들을 탈퇴하게 됐어.
그렇다고 딱히 고찬용과의 관계가 멀어진 것은 아니었고, 1집과 2집에 고찬용이 곡을 써주기도 해.
그렇게 난행복해는 엄청난 히트곡이 됐고, 그러거나 말거나 이소라는 TV출연을 잘 안해.
한 달 동안인가 이소라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는데 한 번도 안 나가서 늘 자료 영상같은걸로 대체했다고 하지.
신인가수 태도 ㅍㅌㅊ?
당시 인터뷰를 해도
"늘 똑같은 말만 하게 되니까요." 라던가, "밖에 나가는건 싫어요." 라던가...
"낯선사람들 활동 때는 한 곡을 나눠서 불러서 괜찮았는데 혼자 한 곡을 다 불러야 돼서 힘들어요."같은 말을 하....곤..........해......
건방진 이소라........
2집 역시 김현철과 함께 작업을 했고, 낯선사람들때부터 가사를 줄곧 써오던 이소라는 1집에 이어 2집의 작사도 하게 돼.
1집은 총 9곡에 5곡 정도 작사를 했고 2집은 김동률에게 받은 '너무 다른 널 보면서'를 제외한 전곡을 작사했어.
2집 역시 1집 못지 않은 히트를 쳤다고 기록되어 있고, 이때의 타이틀 곡은 '기억해줘'였지만
후속곡으로 발표됐던 '청혼'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어.
나중에 '청혼'은 이소라를 대표하는 노래처럼 되어버리는데, 그건 이소라가 진행했던 '이소라의 프로포즈' 덕분이기도 하지.
3.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그간의 활동들
딱히 심야 음악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이소라가 MC를 맡은 이소라의 프로포즈는
대박을 치게 되고 윤도현의 러브레터, 유희열의 스케치북 등으로 명맥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어.
MC제의가 들어왔을 때 이소라는 연거푸 고사했으나, PD가 낯선사람들 시절부터 이소라와 친분이 있던 PD라고 해.
그래서 이소라는 '어차피 내가 하면 망할거 같으니깐 시청률 안나와서 폐지되면 때려쳐야징'하는 마음으로 MC를 맡게 되고
프로포즈를 6년이나 진행하게 됐지.
프로포즈를 진행하던 중에 나온 앨범이 3, 4집이야.
이소라 3집은 이소라 역사상 최악의 흥행 참패를 맛봤다고는 하지만 그건 전작에 비해서 망했던 거지
실제로는 40만장 가량을 판매했어. 어쨌든 부진한 수치였지.
재즈, 블루스 스타일의 1,2집에서 갑자기 하드코어한 롹으로 장르를 바꿔버렸거든.
이 앨범은 김현철의 손을 거친게 아냐. 원래 이소라는 자기 자신을 롹커...라고 생각해왔거든.
그래서 헤비메탈 앨범을 전곡은 아니지만 내게되지.
궁금한 게이들은 이소라 3집의 '피해의식', '너의 일', '나의 일' 이 세곡을 들어보길 바라.
난 처음 듣고 나서 3집은 한참 못 듣겠더라곸ㅋㅋㅋㅋㅋㅋㅋㅋ충격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은 존나 좋아해
4집은 3집의 흥행참패 이후 다시 김현철과 손을 잡고 냈던 앨범인데, 그 유명한 '제발'이 실려있는 앨범이지.
3집이 망해서 다시 김현철에게로 돌아갔다.. 고들 하는데 이소라 성격 상 그럴 위인은 못 돼.
이 사람은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거든. 하고싶던 헤비메탈 해봤으니 그때 하고 싶은거 또 낸 거 같기도 하고...
이소라의 음악관이야 워낙에 복잡한 사람이라 심오한 뭔가가 있겠지만
이소라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가치관은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했어. 자신이 유명해져야 사람들이 자기 노래를 많이 들어줄 테니까.
(실제로 6집을 냈던 2004년에, 불법 음원 다운로드에 대한 얘기가 많자 다운을 받아서라도 들어달라고. 들어달라고 만든 앨범이니까
손해를 봐도 내가 보겠다는 배포있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 화제가 됐었어.)
자신이 진행하던 프로포즈에서 '제발'을 울면서 부르는 바람에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고 제2의 전성기로 연결되는 것 같았어.
그 당시 이소라의 모습이었던 각단발과 터질듯한 벨벳드레스, 그리고 어눌한 말투까지 유명세를 탔지.
"안녕하세요~ 이소라에요우~ 말할거에요~" 라며 이소라를 놀리는 경우도 되게 많았어.
그러나 집순이는 집순이인지라(히키코모리 수준이라...) 프로포즈를 펑크내는 경우도 좀 있었고
4집이 나왔을 땐 앨범 홍보를 위해 소속사에서 같은 회사였던 김장훈과 함께 인터뷰를 잡아놨는데
이소라가 안 나왔대... 그래서 인터뷰가 취소될 것 같아서 김장훈이 열심히 이소라를 대변해 앨범 홍보를 대신 해줬어.
[이소라씨가 밤섬에 사시는데 오늘 비가 와서 카약을 타고 나오셔야 되는데 노를 못 저어서 못 나왔다]고 개그를 쳐서 겨우 방송을 탔다고 하더라고.
그 와중에 나름 인기가수니 스케쥴도 많았어. 뭐 걸그룹 스케쥴 갖다대면야 새발의 피지만
당시 스케쥴을 보면 거의 매일 밖에 나가야 했으니 이소라한테는 너무 과했던 수준의 스케쥴이었지.
거기에다 FM음악도시를 5년을 진행했으니 말야.
4집이 나온 이후 5집까지는 소속사 트러블이 살짝 있었던 것 같아.
현재 이소라 전 앨범 중 가장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게 5집인데, 그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지.
원래 5, 6집이 절판된 상태여서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워. 2007년이 되자 6집의 미개봉 초판 가격은 거의 6~7만원대에 육박하게 되지.
그래서 이소라는 6집을 재발매하게 됐어. 그런데 6집보다 1~2만원 정도 더 높은 가격에서 거래되던 5집은 재발매를 안 해준거야.
그 이유가 이소라에게 5집 판권이 없대. 그래서 안타깝지만 재발매가 어렵다고 하더라고.
이런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그랬는지, 이소라는 '이소라의 프로포즈'를 돌연 그만 두고
그 자리를 윤도현이 채우게 되면서 '윤도현의 러브레터'라는 프로그램이 생겨나지. 이후에도 이소라는 상당히 자주 출연했어.
방송을 잘 안나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이소라 치고는 가장 많이 나가는 프로그램이 러브레터였었지.
5집은 이소라 음악의 과도기라고 보는 앨범이야. 타이틀은 '안녕'이라는 노래였는데 흥행은 별로 못 해.
근데 색즉시공에서 '안녕'이 노래만 없이 무도회?씬? 같은데에 나온다.
그리고 수록되어있던 첫사랑, 데이트 같은 곡들이 각종 CM송으로 쓰이면서 오히려 발표도 안한 곡들이 인기를 얻게 되기도 했어.
4. 진짜 '이소라'스러움의 정립
간간히 러브레터에나 좀 나오고, 음악도시만 진행하며 살던 이소라는 2004년, 6집 '눈썹달'을 발표하게 돼.
이게 별 일 아니어 보일지 몰라도 대중음악계에서는 손에 꼽힐만큼 잘 만든 수작이야.
게이들이 잘 아는 '바람이 분다' 역시 6집 수록곡이었지.
사실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4번 트랙인 '이제 그만'이야. 근데 이거 라이브 하는걸 딱 두번 봄...
'바람이 분다'는 영화 '여자, 정혜' OST로 선뜻 쓰게 해줘가지구 대종상 시상식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지
무대가 존나 스산했어...
허연 천이 나풀거리고 이소라는 이상한 구조물에 올라가있고......
이소라야 원래 노래를 잘했긴 했지만 이때부터 아티스트로의 능력을 인정받게 돼.
작곡만 안할뿐이지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고 컨트롤 하는 프로듀서로의 면목도 보여준데다
기가막힌 작사능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지.
얼마전에는 시인들이 '바람이 분다'를 최고의 가사로 꼽기도 했을 정도고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뽑은 명곡에 8위로 랭크되기도 했던 기억이 있지만 가물가물하노.....☆
게다가 CD를 보통 정성이 아니게 만들어서 표지는 까끌까끌한 천으로 되어있고 가운데 은색실로 눈썹달(=초승달)이 수놓아져 있으며
그 주변을 큐빅 6개, 즉 별 6개가 박혀져 있어. (색상은 보라/회색 중 선택하도록 했지만 덕후들은 닥치고 다 사는거지)
그 와중에 'Dune'이라는 노래가 수록이 되어있었고, 이 노래는 크리스찬 디올 사에서 나온 향수와 같은 이름이기도 했지.
이소라가 자주 쓴다는 향수로, 이 향수 냄새가 날 때마다 느껴졌던 기억을 노래에 담은 것 같아.
그래서 'Dune'의 가사가 있는 속지에는 사막의 사구 그림이 그려져있어(Dune은 사구, 모래언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
거기다가, 그 향수의 향을 모르면 공감하기가 어려울거 아냐? 어떤 향인지 듣는 사람이 궁금할 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향지를 특별 주문해서 Dune향이 나는 속지를 끼워넣기까지 했으니 이정도면 지극정성류 甲 아니겠盧?
그리고 좀 다르게 살아봐도 될 거 같아가지구요~ 그러면서 시트콤에 출연함.
하지마...! 하지말라고!!
하지만 본인이 여태까지 자랑스러워 한다는게 함정
ㅇ........ㅇ.......아...............하지마.......................하지마라고.......
뭐 여튼 이렇게 폭풍같은 방송생활도 하고 그러더니 시트콤이야 뭐 힘드니까 때려쳤겠고
개편을 이유로 음악도시가 폐지되면서 이소라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집에서 틀어박혀서 전혀 안 나오게 돼.
이 시기가 팬들에게는 암흑기로 기억이 되지.
2006년 4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뭘 하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던 기간이기 때문이었어.
그래도 전에는 가끔 방송에 빼꼼 얼굴도 비추고 그랬는데 저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긴 칩거생활을 하다가 이소라는 2007년, 처음으로 '봄'콘서트를 하게 돼.
지금은 벌써 다섯번의 봄이 지나갔지만 저때 당시에는 아무런 홍보도 없었고 심지어 소극장 공연이었어서
골수 매니아들이 폭풍같이 달려들어 티케팅 전쟁을 했지. 그리고 일주일만에 전체 매진. 포스터 한장도 안 붙인거 치고는 ㅅㅌㅊ였지.
저때까지는 기분이 좀 좋았는지 자기 노래 중에 밝은거 부르면서 풍선 나눠주면서 돌아다니고 그랬어.
그해 겨울에는 성시경과 함께 Sentimental City 콘서트를 12월 23, 24, 25일 이렇게 열었었나 여튼 3일간 콘서트를 하고 대구까지 내려갔었지.
L.A.도 갔었다고 하는데 ㅎㅌㅊ였나... 별로 소문이 없었음.
그때까진 신났었던거 같은데 7집 작업을 하면서 이소라는 다시 잠수를 타버려.
매년 '봄' 콘서트를 하겠다더니 쿨하게 한 해 따위 건너뛰었지.
그리고 나서 2008년 겨울, 날짜도 대충 기억한다 12월 18일인가 그랬어. 드디어 이소라 7집이 세상에 나왔지.
5. 제목이 없는 앨범
당시 이소라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7집에 대해 기대 반 두려움 반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어.
왜냐면, 6집에서 이별의 끝을 보여준 이소라가 7집을 도대체 어떻게 만들것인가? 라는 의문 때문이었지.
6집은 정말 수작이어서 더 이상 좋은 것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고, 6집의 퀄리티만 따라온대도 성공이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어.
만약 6집만큼 퀄리티가 받쳐주지 못한대도 좋은 앨범일거라는 얘기까지 나왔지.
이소라 스스로도 7집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앨범을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나왔고, 그도 그럴 것이
그전에는 앨범을 내는 텀이 평균 2년 가량이었는데 6집에서 7집으로 건너가던 시즌엔 무려 4년이 걸렸거든.
어쨌든 이소라는 앨범을 냈고,
앨범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뒷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지.
이별의 대명사 이소라가 이별을 빼버린거야. '바람이 분다'를 부르며 휘청이던 가수가 전혀 다른 노래를 하고 있는거야.
이별의 끝을 보여줬으니 똑같이 이별이 반복되어 지루할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새로운 주제에 혀를 내둘렀어.
앨리엇 스미스를 생각하면서 불렀다는 Track 8이 타이틀이었으나
많은 매니아들과 평론가, 청중들이 꼽는 최고의 곡은 Track 9야.
6집때의 '이제그만'과 '바람이 분다' 사이처럼 되어버렸지.
실제로 이소라가 가장 아끼는 노래는 '바람이 분다'와 'Track 9'라고 해. 본인이 콘서트에서 직접 언급했지.
이소라의 파워풀하고 관능적인 목소리는 사실 4집때까지만 유효했던 거야.
4집 때 부터도 살짝씩 힘을 놓고 있었고 5집에서는 새로운 방법의 부르기를 시도하게 됐어.
(그래서인지 이소라 5집은 6집으로 가기 위한 실험작, 건널목이었다는 평가도 심심치 않게 들려)
6집 이후부터 이소라는 기존의 힘을 주어 누르던 창법을 절제하고 머리 전체를 울리는 듯한 창법을 통해
감정이 지나치게 격양되는 것을 노래에서 막아버려. 그런 절제가 가장 두드러진 앨범이 7집 앨범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때는 6집 때보다 더 실험적이었어 사실.
6집 때 까진 그래도 기존에 같이 작업하던 작곡가들과 일을 많이 했거든.
물론 7집도 많이 도움을 받긴 했지만, 새로운 작곡가들. 예를 들어 마이앤트메리의 정순용씨 같은 분들과 작업하기도 해.
7집이 나온 이후 대중 및 평론가들의 반응은 6집 때와 비슷했어. 아니 더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6집의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평가를 하며 2009년에 상도 여러개 받았어. 네이버 뮤직에서도 올해의 앨범에 선정했던 것 같아.
아는 게이들은 알겠지만 이소라 7집에는 제목이 없어. 그림 제목이라고 하는 제목들만 있는데 바로 이것이야.
한때 상당히 이슈가 되었었지. 여기 있는 그림 제목들은 이소라가 직접 그렸는데(근데 이거 그리는게 어려운거 같진 않아뵈는데...)
본인은 본인 마음에 생각한 제목이 있으니 여러분도 마음 속으로 제목을 정해보시라...고 저렇게 해놓은거야.
제목이 듣는 사람의 상상력이나 감정을 고정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서 박명수가 진행하던 라디오에서 이소라 7집의 8번 트랙을 틀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이소라씨의 '소의 해'(당시 소띠 해 였음), 라던가 '짜증나'(제목이 없어서 소개하기 짜증나서 그랬다했낰ㅋㅋㅋㅋㅋ) 라는 식으로 소개해준 적도 있지.
뭐 어쨌든 7집은 정말 명반이고 작사 능력도 경지에 올라 좋은 가사들도 많아.
이소라는 가사를 쉬운 말로 쓰려고 노력한다고 해. 쉬운 말을 잘 배열해서 쓰는 사람이지.
이후 현재까지 8집 앨범은 소식이 종범이고, 중간에 (2010년에) 팝리메이크 앨범이 나왔었지만 그건 너무 길어지니까 패스.
리멬 앨범은 Gloomy sunday랑 Stuck in the middle with you가 좋고, 타이틀은 My one and only love였어.
6. 전설의 레전드 이소라???
이소라는 생각보다 참 훌륭한 가수야. 노래를 위해 살아가는 것 같은 사람일 정도지.
나가수를 기획했던 쌀집PD가 낸 책에 보면
이소라는 노래를 하기 위해 술, 고기, 커피 이런건 손도 안 댄다고. 세상 밖으로 나가면 세상에 물들어서 노래를 하기가 힘들어져서
일부러 자기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킨다... 라고 써있지.
여기에 대해서 몇 마디를 덧붙이자면. 이소라가 술과 고기 커피를 끊은건 맞아.
예전에는 술도 좀 마셨고 했는데 목은 한번 상하면 다시는 좋은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술을 안 마시게 된 거고(한 10년 됐음, 와인 한잔 정돈 하는듯?)
커피도 비슷한 이유. 고기를 먹지 않게 된 건 고기를 먹으면 소리가 무거워 지기 때문인 것 같아.(채식주의자는 아님. 사골국물먹음)
밖으로 안 나가는건 세상에 동화되지 않기 때문... 이라는 설명은 좀 오바인거 같고.
워낙 예민하고 유리같은 사람이라 밖에 나가서 상처를 받는 일이 잦은데다가 귀찮고, 집이 편하기 때문인 거 같아.
(이소라 말에 의하면 밖은 차가 너무 빨리 달려서 무섭다고함ㅋㅋㅋㅋㅋㅋㅋ자기가 느린건 생각을 못함ㅋㅋㅋㅋㅋ)
다 적긴 어렵지만 이소라가 가지고 있는 노래에 대한 생각은 대충 이래.
노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래서 본인은 언젠가는 노래가 아니라 글로만 소통해야 될 때가 올 거라고 분명히 생각한대(나이가 들거나 뭐 여러 이유가 있겠지)
만약 자기가 그림을 정말 잘 그렸다면 노래가 아니라 그림을 그려서 소통을 했을거란 말을 해.
노래를 위한 노래가 아니라는 거야.
그래서인지 감정을 전달하는데 신경을 정말 많이 써.
이소라가 발음이 안 좋다고 까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이소라가 발음 하는 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아.
나가수에서도 몇 번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는데,
노래를 하기 전에 발음을 다 적어. 팝송도 한글로 다 적는댔엌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느낌에 맞게 발음을 일부러 바꾸는 경우야. 혹은, 또박또박 발음했을 때 감정이 흐트러진다면 발음을 뭉개버리지.
이별을 해서 슬픈 사람이 또박또박 말하는건 좀 웃기잖아. 감정에 뭉개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거야.
그래서 같은 곡의 같은 구절도 노래 진행에 따라 다르게 발음하는 경우가 생겨.
나가수에서 흑마술을 부리는 듯한 넘버원 무대를 본 게이들, 기억하盧?
1절에서는 '자가지는 슬픈 빗' 이라고 발음하지만 클라이맥스에서는 "짜까찌는 쓸픈 삐-(ㅅ)" 이렇게 발음해.
그걸 또 이소라를 흉내내던 '이소다'가 그대로 따라했고, 그걸 본 이소라는
일부러 발음을 다르게 한 것 까지 따라하셔서 굉장히 놀랐다. 라고 말해(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그런데 노래를 할 때 딱히 계산을 하는 타입은 아냐. 이렇게 말하면 이새끼 앞뒤가 존나 다르네 ㅁㅈㅎ쳐먹어라 하겠지만
이소라가 저렇게 하는건 그냥 '저게 맞는 거 같다'는 생각으로, 그냥 그렇게 해야 될 것 같았어요. 라는 이유가 대부분이야.
그래서 천재라고 하기도 하지... 남들은 그걸 계산해서 해도 어려워.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하는건 사실 계산으로는 불가능해.
타고난거라고 볼 수 있겠지.
발성에 목을 매는 게이들도 있을텐데, 이소라는 기본적으로 성악적인 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대중가요에서의 발성은 보통 성대에서 구강까지를 울리는 정도를 쓰는 경우가 많아.
그리고 광대가 있는 곳까지 발성을 하는 가수들을 보고 우리는 '야 노래 잘한다'라고 하지.
이때 대부분은 광대 앞쪽, 그러니까 얼굴 전면을 이용한 발성을 써.
이렇게 하면 노래에 힘이 있고 정확하게, 거의 꽂히는 듯하게 들리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이 열광하기 매우 좋아. 자극적이기도 해.
이소라는 소리를 뒤쪽으로 올리는 편이야.
아마 본인이 부를 때는 좀 정신이 없을 거야. 소리를 머리 앞쪽으로 올리면 소리가 모여서 집중이 되기 때문에 에너지가 응축이 돼서
컨트롤 하기가 그나마 용이한데 뒤로 가버리면 진동이 여기저기를 치기 때문에 부르는 본인이 집중을 해서 소리를 좀 모아줘야 돼.
그리고 이소라는 뒤쪽으로 소리를 올리는데도 잘 모아서 부르는 편이야.
이건 이소라가 인이어에 상당히 까다롭게 구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어.
소리가 앞으로 뻗쳐나가는 경우에는 자기 소리가 모여서 날카롭게 나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가 알기가 쉬워.
근데 뒤로 타고 올라갈 때는 모니터 이어폰이 잘 들려야 해. 그래야 소리를 민감하게 조금씩 조절할 수 있거든...
이라고 쓰면 너희들은 무슨 말이냐며 민주화를 쳐먹일거노?
한줄 요약 : 이소라가 발성을 뒤통수쪽으로 울려서 내는데 잘함. 잘하네여 굿굿
야 너무 길다
ㅠㅠ
힘들어서 못 쓰겠다ㅠㅠ
다음편에 이어서 쓰겠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다음편에서는 '나는 가수다'와 이소라의 와우, 그리고 이소라 노래의 가사 등등
좀 더 세부적인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면서 이소라의 성깔에 대해서도 논해보도록 하자.
3줄 요약
1. 내가 이소라를 좋아해서 글을 쓰는데
2. 너무 길어서 씹스압인데 도저히 줄일 수가 없어서
3. 민주화를 당해도 싸다.
'미디어 > 연예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한지민 (0) | 2013.07.24 |
---|---|
[정보/스압] 헐리웃 신예스타 " 클로이 모레츠" 에 대하여 알아보자 (2) | 2013.07.24 |
에일리, 쇼챔피언 1위후 다리찢은채로 라이브.JPG ㄷㄷ (1) | 2013.07.24 |
진성 존박 모음.jpg (1) | 2013.07.21 |
[스압/정보] 전효성이 속한 시크릿의 역사를 알아보자 [펌] (0) | 2013.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