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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일본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살인 사건 김희로 사건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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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 사건은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살인 사건으로 일본에 알려져있어.

한국에는 자이니치란 차별에 항거한 사건으로 알려졌었지.

 

김희로는 '권희로'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서는 편하게 김희로로 통일할게.

 

우선 김희로의 성장과정부터 살펴보자.

대부분의 살인범들이 그렇듯 김희로는 불우한 성장과정을 거쳤어.

 

1928년 일본 시즈오카현 시미즈에서 조선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김희로는 1931년, 3살 때 아버지가 죽어.

원래 친아버지의 성씨는 권씨였어. 어머니가 5살 때 다른 남자와 재혼하면서 의붓 아버지의 성인 김씨를 따라. 그래서 김희로.

 

▲ 김희로 

 

가난한 집안 사정에 학교를 제대로 나가지 않던 김희로는 5학년 때 소학교에서 퇴학당해.

그리고 이런 환경에 처한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여러 범죄를 일으키며 감옥을 들락날락해.

나중에 김희로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조선인이란 이유로 여러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했어.

 

그렇게 김희로는 자랐어. 1959년 31세, 감옥에서 나온 김희로는 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하고 술집을 차리지만 보기 좋게 실패해.

그 뒤 여러 사업에 손대보지만 어떻게 됐겠어? 다 실패하지. 부인과는 이혼하게 돼.

 

여기까지가 김희로 사건을 일으키기 전의 성장 과정이야. 아주 앰창인생이지?

이런 잃을 것도 없는 앰창인생에 사업은 다 실패하고 조선인으로서 차별 받는다는 열등감, 살인 일으키기 딱 좋지.

 

 

▲인질극 당시 김희로

 

1968년 2월 20일, 김희로는 빚독촉을 하던 야쿠자 2명과 말다툼을 하게 돼. (사실 야쿠자라기 보다는 야쿠자 꼬봉이야. 한 명은 미성년자였어.)

말다툼 중 야쿠자 한 명이 "조1센징, 키타나이 부타야로!!!"라고 말하자 이에 격분한 김희로는 야쿠자 둘을 총으로 쏴죽여.

 

사람을 두 명 죽여버린 김희로는 다이너마이트와 총으로 무장하고 45km 가량 떨어진 한 온천으로 도주해.

그리고 온천 여관에 있는 종업원 및 손님 등 13명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해.

 

▲인질극 당시 한국 기사

 

김희로는 대치과정에서 '경찰의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고자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하며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경찰에게 재일 한국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의 사과를 요구했어.

 

여담으로 이 인질극은 일본의 여러 TV 방송국에서 중계되었는데,

방송국에서 여관에 전화를 건다거나 김희로에게 하늘에 총을 쏴달라고 여러번 요구하는 등

시청률을 위해 인질들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행동으로 후에 여러 까임을 받게 돼.

 

대치중에 개 한마리를 쏴 죽이는 등 88시간의 대치 끝에 경찰이 TV 중계를 통하여 김희로에게 사과를 하면서 인질극은 끝이나.

 

▲체포되는 김희로

 

이 사건은 한국과 일본에 재일 한국인 차별에 대한 문제를 환기시켰어.

물론 1차적으로는 빚독촉에 의해 일으킨 범죄였지만 김희로가 돈이라던가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고

사채업이나 하는 야쿠자들에 대한 인식도 좋지 못했기 때문에 '한국인 차별을 고발하고자 일으켰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어.

 

김희로는 살인죄, 감금죄, 폭발물 단속 위반 죄 등으로 기소당했고,

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희로는 두 차례 항소했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김희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김의 전쟁'

 

복역 중에 한국과 일본에선 김희로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출간되고 영화도 만들어졌어. 영화 이름은 '김의 전쟁'.

김희로 가석방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루어졌고 1979년에는 돈씨 성을 가진 부인과 옥중 결혼식도 가져.

 

▲김희로 가석방 기사

 

그렇게 31년의 징역 끝에 1999년 70세의 나이로 김희로는 한국으로 추방당하는 것으로 가석방 돼.

 

이 때 김희로는 친아버지의 성씨를 따라 권희로로 다시 이름을 바꿔.

 

한국에 온 김희로는 한국정부의 도움을 받아 부산에 정착했으며 한국에서 영웅으로 추대받았어.

'어머니, 미움을 넘어섰어요'라는 이름으로 책도 출판해.

 

▲1999년 당시 김희로에 대한 여론

 

그런데 옥중에서 결혼했던 돈씨 부인도 한국으로 와 같이 살게 되었는데 후에 돈씨 부인이 두차례 권희로의 돈을 들고 달아나는 일이 벌어져.

돈씨 부인은 김희로의 폭행과 폭언에 견디지 못하여 이에 대한 피해금으로 돈을 들고 달아났다고 주장했어. 돈씨 부인은 경찰에 수감 돼.

 

한국에 돌아왔지만 좋아보이진 않은 거 같지?

 

김희로는 일본에서 겪은 일로 여러 강연을 하고 다녔는데, 강연회에서 만난 한 유부녀 박씨와 내연관계를 가지게 돼.

꼬ㅊ는 서는갑지? 71세의 나이인데 말이야.

그 유부녀의 남편을 살인할 계획을 세운 김희로는 흉기를 가지고 내연녀의 집에 침입해 집안에 불을 붙여 살인을 시도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희로 (어떤 요리사가 떠오른다면 착각이다)

 

그래. 김희로는 그냥 살인마였을 뿐이였어.

일본에선 한국인에 대한 차별로 인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말했던 그지만, 이번엔 뭐라고 핑계를 대겠어?

현행범으로 붙잡힌 김희로는 살인 미수, 방화, 감금 등의 혐의로 복역하게 돼.

후에 박씨는 남편과 이혼하고 김희로와 결혼하지만, 얼마가지 못하고 이혼해. ㅋㅋ박씨 남편만 불쌍하노? 

 

이 사건으로 한 때 영웅으로 추대받았던 김희로는 그냥 인간 쓰레기 살인마가 되었어. 

인간 쓰레기 김희로는 그렇게 한국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잊혀지게 되었지.

 

 

▲2010년 3월 26일 향년 83세, 김희로 사망

 

나중에 김희로는 그러고도 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하는데, 역시나 살인마들은 여성 편력이 휼륭한 것 같다.

그 뒤로는 조용히 살다가 2010년 3월 26일 향년 83세, 전립선 암으로 사망해.  

 

한 때 '차별과 싸운 민족의 영웅'으로 추대받았던 김희로는 흑역사가 되어 한국 국민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돼.

 

 

세줄요약

1. 앰창인생을 살던 김희로는 빚독촉하던 야쿠자 2명 죽이고는

2.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의함이라 주장하며 차별에 항거한 영웅이 되었지만

3. 또다시 살인을 시도하며 그냥 인간 쓰레기 살인범임이 탄로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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