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받이 문화는 다들 잘아실꺼임
뭐 TV사극이나 영화에도 자주 나온 소재니까
하지만 잘 모른다 할 급식게이들은 위해 설명드리자면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혹은 자손을 보기 위해
일종의 대리모를 들여 동침시키고 그렇게 잉태가 되고
출산을 하면 적정한 보상을 해서 다시 내보내는 관습인데
첩실을 들이는 것과는 다름.
뭐 첩실은 양반문화, 씨받이는 서민문화라고도 하는데
양반가문도 암암리에 씨받이를 들이곤 함
첩실은 세도높은 양반이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함.
첩실은 데리고 살지만
씨받이는 일이 끝나면 내보내니까.
그리고 첩실은 딸을 낳아도
어쨋든 서출이고 종처럼 부려도
자식대접을 해주는 반면 (시집가면 혼수도 해줬음)
씨받이는 그 애랑 같이 내보냄. 아예 취급도 안한단 소리
그래서 씨받이 출신이나 그 딸들이 사는
집단거주지가 있었을 정도고 그 씨받이 딸들이
다시 씨받이로 가는 악순환이 이어짐
사실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사회적 체신때문에도
씨받이를 암암리 행해졌는데 우리가 흔히
고려 귀족들이나 조선 양반들은
마음껏 첩실을 거느리고 떡치며 사는줄 아는데
사실 그것도 아님. 첩실을 둘 경우
오히려 출세에 지장을 받거나
사회적인 질타를 받는 경우도 받았음.
고려사 열전이나 조선왕조 실록을 보면
왕이 신료들에게 넌 ㅅㅂ 정실 놔두고 첩을 왜 데리고 사냐
(그러는 자기는 ... 후궁을 왜 두는지) 면박주는 것도 내용도 있고
고려 충렬왕 때대신 박유는 첩실을 둬야한다 건의했다
당시 고려 귀족부인들에게 거센 항의와 반발을 불러
고려사회가 발칵 뒤집어졌고
엄처(엄한 마누라)시하에 사는 신료들까지
(보빨때문에) 반발하고 난리도 아니였음
이는 조선시대에도 이어짐. 후실 둔다는게 보통일이 아님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 무서워하는 보빨러들은 다수 존재함)
괜히 안방마님 이란 말이 나오는게 아님.
정실부인이 설사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불임이라도
함부로 내칠 수도 없고 공연히 후실 두면
처첩갈등에 경제적 부담까지 골치아프니
한번 먹고 버리는 씨받이를 두는 거임
사실 우리나라만 그런건 아니고
다른나라도 이와 비슷한 문화는 있었음.
다만 우리를 비롯한 동아시아권은 아들을 얻기위해 그랬다면
유럽등은 아들도 좋지만 딸을 얻기 위해서도 행해졌다함.
하지만 반대로 씨내리 풍습도 존재했음.
집안의 남자가 불임이거나 혹은
집안의 일가 친척이 전무하여 양자도 들일 수 없을때
말 그대로 집안의 대가 절단나게 생겼을 때 극약처방임.
아니 ㅅㅂ 친척이 아니여도 그냥 다른데서라도
양자 들이면 되잖아. 굳이 아내를 외간남자랑
떡쳐서 그렇게 얻어야돼? 반문하는 게이들도 있을텐데
사실 양자를 들인다는 것도 보통일이 아님.
설사 친척이 아닌 다른집에서 양자를 들였다하더라도
그로 인한 갈등은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빈번했음
(재산 물려받음 다시 낳아준 부모찾고 통수치는 경우도 많고)
머리 검은 짐승 함부로 거두는게 아니라고
고려시대 귀족이나 조선시대 양반들도
양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았음.
그러다보니 할수없이 대리부 (씨내리)를 들여
아내랑 동침시키고 감쪽같이
자기새끼로 위장해 낳아 키우는거임
대개는 집안의 힘쎈 머슴을 동침시켰는데
사실 이건 리스크가 큼. 이 머슴새끼가
입이라도 한번 잘못 놀리고 혹여 담이 큰 새끼는
훗날 이 문제를 들고나와 집안을 협박할수도 있는 경우도 있으니
(그렇다고 죽여버리자니 처벌이 두렵고)
이런 리스크를 싫어하는 귀족이나 양반들의 경우
건장한 소금장수등 봇짐장수들을 들여
동침시키는 방법도 있었음.
뜨내기 장사꾼이니 한번 가면 다시 찾을 리 없잖음
(물론 치밀한 새끼들은 다시 찾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식으로 철저한 비밀 유지를 위해
봇짐장수 얼굴을 가려 동침을 시켰다고해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외간남자랑
동침한 아내들은 그 후 과연 어땠을까.
사실 일게이들도 생각해보라이기야
내 여자친구나 와이프가 다른 새끼랑 떡쳤단걸
생각해보면 아마 답이 나올텐데
고려 귀족들이나 조선 양반들도 마찬가지임
어떤 이들은 대를 잇기위해 가문의 강요로
어쩔수없이 그런 선택을 한 아내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눈물을 머금고
이를 수용하고 보다듬는 남편들도 있었고
귀족이나 양반 체면에 나가뒈져라 이 ㅅㅂ년아
할수 없으니 점잖은 척 출산 선물로
은장도를 주면서 알아서 처신해라
아내가 자결하도록 은근 압박하는 경우도 많았다함
하지만 무자비한 유형도 있었는데
양천허씨로 고려 공민왕때 밀직부사를 지낸
허유의 경우가 바로 여기에 해당함.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허유는 왜구토벌과 홍건적의 난때
공이 있던 문신이였는데 정실과 첩실, 씨받이를 들여도
자신이 불임인지라 자식을 낳을 수가 없었음
집안 어른들의 압박도 있고 본인도
후손을 보고싶은 맘에 싫다는 첩과 머슴을 협박하여
동참시켜 아들을 보았으나 질투심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내의 양쪽 귀를 잘라내고
머슴의 코를 뚫어 고삐를 매고 성기를 잘라내버렸다고함.
지가 강요해놓고 질투심에 아내랑 머슴을 ㅁㅈㅎ 시킨건데
이에 대해 당시 고려사회도 경악 그 자체.
후에 신돈의 전횡을 비판하다 유배를 가게되는데
이에대해 그래도 싸다. 라는 반응이 많았다고함
공민왕 또한 자제위라는 미소년들을 뽑아
자신의 시중을 들도록 하는 한편, 동성애를 즐기고
심지어 후궁들과 자제위를 동침시키는걸
즐겼다고 하는데 그중 홍륜이
후궁인 익비를 일까지 발생해. 후에 이 일이 화근이
되어 공민왕이 시해당하는 일까지 벌어지는데
사실 이에 대해선 다소 과장됐다는게 정설이야
아마 조선이 고려의 멸망에 대한 합리화를 하다보니
동성애라든지 씨내리문화를 의도적으로
과장했다는게 뭐 이건 계속 얘기해봐야할 문제인거같고
이제 그만 정리하기로 하고 일게이들에게 묻고싶네
만약 일게이들은 대를 위해 가문의 강요로
씨내리를 자행했다면 과연 그 아내를 어떻게 했을지
뭐 사람 성격이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선택을 할테니까.
90년대 KBS 전설의 고향에서 다룬 씨내리 편이야.
컴퓨터로 보는 게이들은 그냥 보면 되고
스마트폰으로 보는 게이들은 이어폰껴야 소리가 나더라
오랜만에 전설의 고향. 보고싶단 게이들이나
이런 거 처음본다는 게이들은 보고싶음 보거나 말거나 하고
오늘 글은 여기서 그만
3줄 요약
1 고려나 조선에서는
2 씨받이도 있었지만 씨내리 풍습도 많았음
3 일게이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실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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